경배를 드린 동방박사처럼
마태복음 2:1-12
우리들은 모두 고국을 떠나 살고 있습니다. 고국을 떠나 미국에 도착했을 때 누가 공항에 나와 우리를 인도했느냐가 미국생활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사는 지역이 결정됩니다. 직업이 결정됩니다. 심지어 먹는 쌀까지도 같은 것을 먹게 되는 것을 봅니다. 누가 인도했느냐에 따라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고향을 떠난 타향살이에 얼마나 고단하십니까? 말이 통하지 않아 얼마나 어려움이 많으십니까? 사랑하는 가족을 고국에 두고 이국땅에 와서 눈물로 밤을 지낸 날은 없으십니까? 이런 때에 누가 나서서 도와주는 분이 계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럴 때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주님의 인도를 받을 수가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의 인도를 우리는 경험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위해서 2000여 년 전 저 이스라엘 땅 동쪽에 살면서 주님의 특별한 인도를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소위 동방 박사들의 이야깁니다. 동방 박사들은 하나님의 어떤 인도하심을 받아 먼 길을 떠나 아기 예수님을 만나 경배드릴 수 있었습니까? 우리가 본문을 묵상하면서 계속 이 질문을 해야 합니다. 고통스런 이 시대에서 내가 주의 인도를 받으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사실입니다. 이번 성탄절에 동방박사들과 같이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함을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주의 비전을 바라보라
주의 인도를 받으려면 우리는 주님의 비전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의 비전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시랑하시는 여러분, 제가 ‘당신은 최근에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고 계십니까? 정말 하나님의 인도를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계십니까?’하고 질문을 던진다면 모르긴 몰라도 우리들 가운데 상당한 사람들이 이 질문 앞에 당황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사는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구체적으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이 무의미하고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까닭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린 이렇게 사는 거예요. 그냥, 그냥 사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희망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꿈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내 가슴을 설레게 할 수 있는 인생에 새로운 꿈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주 앞에 엎드릴 것입니다. 하나님! 좀 도와주십시오. 주님이 인도해 주십시오. 이런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열망을 주 앞에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오늘 본문의 동방박사들은 왜 동방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찾아왔습니까? 그 여행의 시작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어느 날 하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별을 본 것입니다. 이 별을 보자마자 그들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별이 그들의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삶을 향해서 출발했습니다.
여러분은 88서울올림픽 때 세계적인 영웅으로 떠오른 흑인 여성 그리피스 조이너(Griffith Joyner)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육상 선수로서 세 개의 금메달과 한 개의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녀는 본래 로스앤젤레스 남쪽 빈민가에서 11명의 자녀 중에 한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정부의 보조를 받으며 근근히 살아가는 그 소녀는 꿈도 없이 절망 속에서 살았습니다. 마치 우울증 환자처럼. 학교에서도 구석에서 혼자 말없이 지냈습니다. 그의 어린 영혼 속에는 영원한 생명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유명한 권투 챔피언 슈거 레이(Suger Ray)가 방문을 하였습니다. 학생들은 환호성을 울리고 소리를 지르며 그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슈거 레이는 소녀 하나가 구석에 홀로 쪼그리고 앉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땅만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강연을 마치고 소녀에게 다가가 “얘야, 어디 아프니?”하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 소녀는 발작이나 하듯이 “다 싫어요, 저는요, 집도 싫고, 학교도 싫어요!” 라고 외쳤습니다. 슈거 레이는 소녀를 끌어안고 이름을 물은 후 “너 좋아하는 것 없니?”라고 물었습니다. 순간 소녀는 눈을 빤짝이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뛰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 그러면 너도 나처럼 유명한 선수가 될 수 있어. 너도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단 말이야. 꿈을 가지면 부자란다. 네가 그런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내가 하나님께 기도해 줄게.” 그는 소녀의 손을 꽉 잡아 주었습니다. 그 날부터 그 소녀는 달라졌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그녀를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달리기를 시작한 후 마침내 88서울올림픽에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하늘의 별을 보는 것입니다. 비전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을 위해서 하늘의 별을 걸어 놓습니다. 성경에 보시면 주님은 끊임없이 약속을 되풀이하십니다. ‘말세에 내가 나의 종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리니 그러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요.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꿈을 주시는 하나님, 비전을 주시는 하나님,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찬란한 꿈과 비전을 바라보고 인생의 길을 달리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눈을 들어 보십시오. 어두운 하늘, 저 높은 곳에 하나님이 걸어 놓으신 희망의 별을 그리고 비전을 볼 수가 있다면 우리는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먼저 이 비전을 보아야 됩니다. 그리고 이 비전을 보는 순간 내 인생을 끝나지 않았다. 주님은 아직도 내 인생에 대한 기대를 갖고 계시다. 내가 살아야 할 그리고 내가 걸어가면서 해야 할 내 인생의 목표가 남아있다. 이 하나님의 꿈을 본다면 좌절은 이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의 인도를 기대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하십시오. 꿈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둘째로 주님의 인도를 받으려면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이 동방의 박사들이 어떻게 이 별이 메시아의 별인 것을 알게 되었을까요? 동방박사들. 무슨 박사일까요? 화학 박사일까요? 무슨 박사일까요? 이 박사라는 말이 영어 성경에 보시면 magi라는 단어입니다. 그 말하고 가장 가까운 영어 단어 하나를 우리가 떠올릴 수가 있습니다. Magic. 마술입니다. 박사들은 마술삽니다. 마술사는 지금의 우리가 박사라는 단어가 떠올리는 뉘앙스처럼 고대의 마술사는 오늘날의 박사들과 거의 같은 대접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 나라 이국의 포로로 갔다가 남의 꿈 한번 풀어주었다가 출세한 유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굽니까? 요셉과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서 2: 48- 49을 보겠습니다. 다니엘 2장 48절 먼저 읽겠습니다.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세워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박사의 어른을 삼았으며’
다니엘이 왕의 꿈을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에게 어떤 지위가 주어 졌습니까?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도지사들까지 다 감독하는 최고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이 48절의 마지막 부분에 보시면 다니엘은 바벨론 모든 박사의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박사들이 많이 있었고 그 박사들 중에 별을 연구하는 점성가도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우두머리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그들에게 주어진 직책을 보면 그 당시에 이런 점성술사는 일종의 그런 마술사 정도가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의 엘리트들입니다. 그 만큼 존경을 받았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박사들 가운데서 다니엘은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풀 수 없었던 왕의 꿈을 풀었습니다.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느냐 사람들이 물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틀림없이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지혜를 주고 있는 놀라운 책이 하나 있습니다. 틀림없이 다니엘은 그 사회의 사람들에게 이 중요한 책을 소개했을 것입니다. 뭘까요? 성경입니다. 성경. 그래서 바벨론이라는 외국 땅에 이 성경이 역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박사들은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 이쪽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성경을 접하면서 그들은 성경의 중요한 예언하나를 주목했을 것입니다.
민수기서 24:17에 보면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리라. 이스라엘을 구출하고 온 세계의 소망이 되기 위한 구세주 메시아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나온다. 그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 어느 날 출현할 것이다. 이 말씀을 알았을 것입니다. 다니엘을 통해서 이 말씀을 전해 듣고 동방의 박사들은 하늘의 천체들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별이 하나 나타났어요. 이상한 별이었습니다. 강력한 빛을 발하면서 하늘에 나타난 이 별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이 박사들은 다 메시아다. 메시아가 오셨다. 그리고 그들은 여행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인생이 뒤바뀌는 놀라운 순간이에요. 그들의 삶을 바꾸는 놀라운 여정이 그들의 인생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매우 크리스천들이 오해하는 대목 중에 하나가 있어요. 그 오해는 뭐냐 하면, 주로 이것은 크리스마스 캐롤이나 찬송가 때문에 오는 오해입니다. 우리가 지금 부르는 찬송가 가운데도 보면 동방의 박사들이 별 따라왔다. 그러니까 이 별이 한 번 딱 나타난 다음에 그 다음에 그 별은 계속적으로 박사들의 걸음을 인도하면서 그들은 사막을 건너고 강을 건너고 들을 지나서 별 따라 드디어 예루살렘까지 왔다고 착각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다시 본문을 살펴보면 이 별이 나타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별은 아마도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이 별의 출현을 통해서 메시아가 오셨다. 그는 당연히 이스라엘 땅에 나셨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을 찾아온 것입니다. 예루살렘까지 오는 동안에 그들은 별을 보고 찾아 온 것이 아니고 그들은 말씀을 붙들고 찾아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팔레스타인 땅을 향해서 떠나 온 것입니다. 예루살렘까지 와서 사람들을 붙들고 묻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어디 나셨습니까? 아니 인류의 왕이 인류의 소망이 될 메시아는 어디에서 나셨습니까?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통해서 그분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다가 다시 그 동방에서 보았던 별을 보게 됩니다. 그 때 그 별이 다시 출현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9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 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여기 9절에 동방에서 보던 이란 말이 과거 시제입니다.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서 기적적으로 출현했던 그 별을 다시 보았어요. 그 별이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에서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메시야는 베들레헴 어디에 계실까하고 걱정하며 찾아가던 그들에게 갑자기 별이 다시 출현한 것이 예요. 그것은 얼마나 감격이였을까요? 그래서 그 다음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0절입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뭐 별 따라 계속 왔다면 이제 와서 놀랠 필요가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이 베들레헴 상공에 갑자기 나타나서 강렬한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얼마나 기쁨이고 감격이었을까요? 그들은 놀라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팔레스타인까지 걸어오는 그 과정에서 그들이 줄곧 그들을 인도한 것은 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을 보고 그들은 쫓아온 것이 예요. 말씀을 붙들고 찾아 온 것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기 위해서 의지해야 할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기적은 항상 일어나지 않아요. 기적은 가끔 일어나기 때문에 기적입니다. 기적이 날마다 일어나면 더 이상 기적이 아니 예요. 기적이 없을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인생을 살다 보면 신앙인들의 생애 속에 어느 날 기적이 체험될 수가 있습니다. 갑자기 눈이 열립니다. 삶의 길이 환해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적이 항상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그쳐버린 밤, 내 삶이 캄캄한 어둠의 들을 헤매는 고독한 이 밤 중 기적이 없는 밤중에 뭘 의지하시겠습니까? 그 때도 우리가 의지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 신앙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신앙의 근거는 언제나 말씀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붙들고 말씀을 신뢰하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행진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무엇으로 말미암았습니까? 그리스도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내 삶 속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기적이 없는 어두운 밤과 같은 때에도 나는 하나님 말씀을 붙듭니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성경이, 메시아가 이스라엘에서 탄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이스라엘 땅 어디엔가 나셨을 것이다. 그 말씀을 붙들고 사막을 건너고 강을 건너서 박사들은 베들레헴까지 온 것입니다. 내 인생이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맬 때 내 머리 위에 기적의 별이 나타나지 않아도 여러분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의지하고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주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을 배우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예배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셋째로 주님의 인도를 받으려면 주님을 예배하는 자가 돼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 이 말을 들을 때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무엇이 가장 커다란 관심이 됩니까? 예를 들어서 사업을 하시던 어떤 분이 예배라고 답변했다고 하면 이해가 가시겠습니까?
내가 하는 사업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를 좀 받아야겠다. ‘하나님! 제 사업을 인도해 주십시오.’ 기도를 합니다. 그 다음에 내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을 생각은 어떤 생각이 인도될까요? 어떤 사업일까?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도와주실까? 그 부분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또 혼자 사는 자매나 형제가 결혼을 위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 제 배우자를 인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인도를 기도했어요.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뭘 생각할 까요? 이 남잘 아니면 저 여잘까? 내 님은 미스터 김일까 아니면 미스 최일까? 뭐 이런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고자 할 때 가장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본문의 말씀을 주해하던 지나간 시대의 청교도 설교가였던 토마스 왓슨은 이런 매우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인도하실 때 하나님이 우릴 첫 번째로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게로 인도하신다. 하나님 우리를 인도하실 때 하나님이 제일 먼저 인도하는 곳은 어디라고요? 하나님 자신에게로 인도하신다. 그렇다면 내가 인도함을 받아서 어떤 일을 하게 되느냐? 내가 인도를 받아서 어떤 축복을 누리겠느냐? 하나님의 인도에는 반드시 보너스가 따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의 인도함을 통해서 경험하게 될 축복보다도 먼저 우선적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내가 주님이 나를 인도하신다면 나는 그 주님을 만날 수 있다. 역사를 창조하신 하나님, 인류의 소망이신 그 분, 나의 구원이신 그 분을 경험한다. 그 자체가 내 삶에서 감격이고 흥분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동방의 박사들은 처음부터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들은 이 메시아를 만남으로 그들이 출세할 것에 관심 있지 않았어요. 물론 그런 기대도 은근히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이 지금 여기까지 예루살렘까지 찾아왔던 목표가 무엇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2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세요.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메시아가 나셨다는 것을 안 순간 동방의 박사들을 지배한 가장 커다란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역사의 소망, 인류의 소망, 우리들의 소망이신 Messia. 그 분 앞에 엎드리고 싶다. 그 분을 경배하고 싶다. 그들은 이 경배의 소원, 경배의 열망을 가지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열망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주님은 박사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늘의 별을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섭리를 통해서 그들을 마침내 이 땅에 오신 하나님 그 분 앞으로 인도하십니다. 이 메시아를 만나는 감격의 장면을 오늘의 본문은 어떻게 묘사합니까? 11절 다같이 읽겠습니다.‘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집에 들어가서 이 동방의 박사들은 맨 먼저 무슨 일을 했습니까? 아기께 경배했습니다. 박사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별을 쓰셨습니다. 그러나 이 박사들은 별을 경배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별을 쓰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쓰신 별이 경배의 대상이 되면 별은 그 순간부터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해서 마리아를 쓰셨습니다. 마리아라는 아름다운 여성을 쓰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 점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아기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만이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셨습니다. 바로 그 아기 예수께 엎드려서 경배합니다. 경배의 초점은 뭘까요? 경배의 초점은 드리는 것입니다.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예배를 생각할 때 예배를 통해서 받는 것을 축복으로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 자신이 예배의 관심이 돼야 합니다. 축복이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축복이 목적이라면 그것은 예배 정신의 타락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주님, 나를 구원하신 주님, 그 분 앞에 사랑을 드립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찬양을 드립니다. 기도를 드립니다. 헌금을 드립니다. 예배정신의 핵심은 드림입니다. 박사들은 받는 것에 관심 있지 않았습니다. 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뭘 드렸습니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을 드린 것입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여러 가지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하게 생각하십시오. 그들은 준비한 최선의 것을 최고의 왕 되신 예수님 앞에 드린 것입니다.
예배가 여러분의 관심입니까? 예배가 우리의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배하고자 하는 꿈. 이 꿈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하십시다.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 하나님을 경배하고, 이웃을 섬기고 세계의 열방들을 섬기는 겸손한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축복 자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주님에 대한 관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때 그 분은 먼저 우리를 자기 자신에게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동방 박사들을 아기 예수 앞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경배 드리는 순간, 주님은 얼마나 기뻐 하셨을까요? 그리고 이제 보너스 축복이 시작됩니다. 보너스 축복이 뭐였어요? 그 다음절 보시면 12절에 보세요. 12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아기 예수를 경배한 다음에 그 날 밤 하나님은 그들에게 역사 하셨습니다. 그래서 계시를 주십니다.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 헤롯을 만나지 말라. 다른 길로 네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면 헤롯은 박사들과 아기 예수를 죽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배했던 그들에게 하나님은 특별히 인도하셨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인도가 있어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역사의 어두움 속에서 내 삶의 주인 되신 하나님 앞에 겸허히 엎드려 경배하는 자들에게 인생의 새로운 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우리 인생의 미래를 인도하실 하나님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주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경배한다면 하나님은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우선 보너스에 관심을 갖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엎드리십시다. 왕 중의 왕이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비우시고 이 땅에 오신 주님. 그리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생명의 주님. 구원의 주님. 그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을 사랑하고 감사하십시오. 경배를 드리십시오. 이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배를 배우고 예배를 드릴 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내일이 펼쳐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인도하심으로 승리의 인생이 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기도하십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