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달리기 열풍이 불었을 때, 나도 달리기를 해볼까 생각한 적이 있다. 뱃살은 확실하게 빠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하프 마라톤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왜 달리기를 하는지 물었다. “달리기를 하면 뭐가 좋기에 그렇게 열심입니까? 기분이 좋습니까?” “말도 마십시오. 죽을 지경입니다. 오죽하면 올림픽 금메달을 딴 마라토너도 연습할 때 달려오는 자동차 바퀴에 뛰어들고 싶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42.195킬로미터를 다 뛰지 않지만 숨이 차서 죽을 것 같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다 뛰고 나서는 엄청 기쁘죠. 죽을 것 같은 순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참고 달릴 수 있는 겁니다. 내딛기 힘든 것만 생각해서는 절대 못 달립니다. 긴 안목을 갖고, 긴 호흡을 갖고 순간이 고통스러워도 내 육체가 건강해지고 내 정신이 건강해지는 기쁨을 알기 때문에 달리는 거죠.”

  

그렇다. 우리의 신앙 여정에, 인생 여정에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마라토너와 같은 긴 안목일 것이다. 독수리는 밑에서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높이 날아서 전체를 한눈에 훑어본다. 마라토너는 당장 1~2킬로미터를 잘 뛰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42.195킬로미터의 장거리를 잘 뛰는 것이 목표다. 호흡이 길다. 지금 내게 닥치고 있는 상황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오늘은 인생이라는 퍼즐의 한 조각일 뿐이다. 하루하루 삶의 조각을 붙들고 있지 말고,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내다보며 한 발자국씩 힘차게 내딛는 마라토너의 긴 호흡이 필요하다. 독수리의 긴 안목이 필요하다.

 

                                     오정현이 쓴 <순종선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