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1-16

 

I. 참 포도나무

바다의 대왕 고래가 큰 사고로 피를 많이 흘려 죽게 생겼습니다. 앞다퉈 물고기들이 헌혈을 했습니다. 그런데 평소 고래의 사랑을 받던 붕어가 헌혈을 하지 않는 겁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진심 어린 고백을 했습니다. "사실 난 붕어가 아니라 붕어빵이야." 붕어빵 속엔 붕어도 없고 붕어 피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우리 안에 예수의 피가 없고 우리 삶속에 예수님의 열매가 없다면 어찌 우리가 예수님의 사람이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시간 "성령의 열매" 시리즈 첫 시간 「예수 나무, 예수 열매」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출애굽기 3장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대답합니다. 영어로 "I am who I am.- 나는 나다." 이 말은 굉장한 말입니다. "나는 누가 만들어서 존재한 것도 아니고 누가 있으라고 해서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영원 자존자이다"라는 뜻입니다.

구약 출애굽기에 있었던 "I am"이라는 이 표현이 신약 요한복음에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의미하는 "에고 에이미 - I am" 이 말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요한복음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을 가리켜 "나는 무엇 무엇이다" - "에고 에이미"라는 표현을 일곱 번이나 하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나는 양의 문이다(10:7). ·나는 선한 목자다(10:11). 나는 부활이다. 나는 생명이다(14:6)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나는 참 포도나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참 포도나무란 말씀은 가짜 포도나무가 있었다는 말이지요.

구약성경에서 포도나무란 이스라엘 백성 즉 성도를 의미했습니다.

(시 80:8)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예 2:21)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

(사 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종으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가나안 땅에 심고 좋은 열매 맺기를 기다렸더니 먹지 못할 못된 열매를 맺었다고 탄식하십니다. 인생은 모두 실패한 포도나무, 버려진 포도나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짜 포도나무들을 구하기 위해 참 포도나무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열매없고 버림받은 포도나무에 좋은 열매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다."

II. 꽃과 열매

포도나무는 나무라고 하지만 실은 포도덩쿨입니다. 포도나무는 관상용 나무가 아닙니다. 볼품이 없는 나무입니다. 더구나 재목으로 쓰이기엔 턱없이 부족한 나무입니다. 그렇다고 땔감으로 쓸만한 나무도 못됩니다. 썩혀 거름으로 쓸 수 있는 나무도 아닙니다. 포도나무는 오직 열매를 위해 존재하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열매없는 포도나무는 찍어 불에 태울 수밖에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교훈 삼아 오늘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이유도 오직 열매를 맺는데 있다고 말씀합니다. 본문의 결론은 마지막 16절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열매 맺는 삶을 강조하면서 성경은 늘 꽃과 열매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꽃을 구하는 인생은 떨어지는 꽃처럼 허무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꽃은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세상 가치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꽃이라는 단어를 약 37번쯤 사용하고 있습니다. 반면 200번 이상 등장하는 열매는 언제나 궁극적이고 종말론적이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일컫고 있습니다.

(욥 14:1-2)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그는 꽃과 같이 자라나서 시들며"

(시 103:15-16)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약 1: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벧전 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래전 조용필이란 가수가 부른 노래 가운데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 이 노래는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의 주제가 입니다.

포도나무를 심은 농부의 소원은 예쁜 꽃을 보는 것이 아니라 풍성한 열매를 소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창1:11)

복 있는 사람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편1:3)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언11:3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골1:10)

오늘 우리 시대는 꽃을 구하는 시대, 순간적이고 외적인 아름다움만을 구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열매 맺기를 기대하십니다.

III. 예수 열매

가을은 모든 나무들이 열매를 내어놓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가을은 축복의 계절이요 동시에 심판의 계절입니다. 가을 들녘에서 좋은 열매를 많이 내어놓을 수 있는 나무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얼마나 흐뭇할까요? 그러나 열매를 내어놓을 수 없는 나무는 얼마나 초라하고 한편 부끄럽고 두려울까요?

오늘 본문 2절에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도 있고 열매를 맺는 가지도 있습니다. 같은 2절, 그리고 5절, 8절에 더 많은 열매를 맺는 가지도 나옵니다. 인생의 가을이 올 때 바로 이런 가지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열매 맺고 싶지 않은 과일 나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좋은 열매 많이 맺어야지" - 욕심 부린다고 열매가 맺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나무가 되면 좋은 열매는 저절로 맺혀지는 것입니다. 좋은 씨를 뿌리면 좋은 열매를 거두고 나쁜 씨를 뿌리면 나쁜 열매를 거둡니다. 좋은 나무가 되면 좋은 열매가 맺혀지고 나쁜 나무가 되면 나쁜 열매가 맺혀집니다. 이 얼마나 당연한 진리입니까? 나쁜 나무로 자라놓고는 좋은 열매를 맺겠다고 하니 사기꾼이 나오고 거짓말쟁이, 위선자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오늘 본문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 좋은 나무요 당연히 좋은 열매가 맺혀지게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왜요? 예수님이 우리의 나무요 우리는 그의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맺는 열매도 분명합니다. 사과 나무엔 사과가 달리고 배 나무엔 배가 달리고 포도나무엔 포도가 달립니다. 우리가 예수 나무라면 우리에게 맺혀지는 열매 또한 예수 열매일 수 밖에요.

"너희가 예수 나무라면 나를 떠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예수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다." 이 얼마나 당연한 말씀입니까? "예수님 떠나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 떠나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떠나서 나는 어떤 좋은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입니다. "내게서 예수 빼고 나면 내게 남는 것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사람,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어 몸부림하고 계십니까? 지금 곧 그 몸부림을 중단하고 그냥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요. 예수 열매, 용서의 열매, 사랑의 열매가 저절로 맺혀질 것입니다.

괴팍한 성격과 늘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항상 자신과 싸워야 하는 분이 계십니까? 더 이상 자신과 싸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가슴에 더 많이 담으려고 하십시오. 예수님을 항상 묵상하십시오. 아름다운 성품의 열매, 예수 열매가 맺혀질 것입니다.

탐욕, 게으름, 거짓, 부정적 생각, 비난, 이웃과의 잦은 갈등...

떠나지 않는 허물을 붙들고 발버둥치지 마십시오. 그냥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때 거짓된 열매들 대신 예수 열매가 맺혀질 것입니다.

예수 열매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인격, 예수님의 품성, 예수님 존재를 닮으면 예수 인격의 열매가 맺혀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22-23을 보십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여기 재미있는 사실은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열매는 모두 인격적 열매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성령의 열매가 아홉 가지나 나오는데 열매란 말이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이 열매들이란 모두 한 인격에서 나오는 아홉 가지 다른 맛을 의미합니다. 아홉 가지 얼굴로 등장하지만 모두 한 가지 예수 열매란 말입니다.

여기 인격의 열매 외에 또 다른 예수 열매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던 일,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내가 하면 그것이 예수 열매입니다. 즉 인격의 열매와는 다른 사역의 열매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전하여 맺는 전도의 열매가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를 드려 맺는 헌신의 열매가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므로 맺는 선한 열매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므로 맺는 예배의 열매가 있습니다. 주님과 깊은 교제를 통해 맺는 기도와 응답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열매에는 예수님을 닮아서 맺는 인격의 열매, 성령의 열매가 있고 예수님의 일을 하므로 맺는 사역의 열매가 있습니다.

IV.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은 우리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를 선택하시고 구원해 주시고 복을 주신 이유는 많은 열매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8절)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토록 과실을 기대하시면서도 "과실을 맺으라" 한 번도 명령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전체를 읽어도 "열매를 맺으라" 명령형 문장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왜요? 예수 열매, 성령의 열매는 몸부림해서 맺는 열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발버둥쳐서 맺는 열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저절로 맺혀지는 성령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1절부터 10절까지만 읽어보면 "안에 거한다"는 말이 무려 11번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4절)

신앙생활이란 열매를 맺지 못해 늘 가슴을 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묶여지고 하나가 되기 위해, 예수 안에 평안히 거하기 위해 애쓰는 싸움입니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갈림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종교 특별히 불교는 내가 나를 구원하고 내가 부처가 되고 내가 도를 닦아 열매를 맺는 자력종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철저히 타자에 의한 구원, 타력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종교라면 타종교를 종교라 할 수 없습니다. 타종교가 구태여 종교라면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이 엄청난 진리를 본문은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맺히는 열매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교훈 설교 오늘 본문 요한복음 15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1절)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이게 무슨 말씀일까요? 포도나무를 심으신 분이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김 메고 거름주고 가꾸신 분이 농부입니다. 여우새끼들로부터 포도밭을 지키시는 분이 농부 아버지 이십니다. 열매를 맺도록 가꾸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이 농부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하나님이 열매를 주신다는 겁니다.

여기에 신앙의 원리가 있습니다. 농부되시는 하나님의 농사기술을 믿는 것입니다. 참 포도나무되신 예수님의 능력과 성품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에게 붙어 있기만 하면 열매가 맺혀질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를 심었다. ·그분이 영양분을 주셨다. ·그분이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그분만 예배하고 그분만 기뻐하고 그분만 사랑하면 풍성하게 열매는 맺힌다. 할렐루야.

좋은 열매 맺으라고 욱박지를 필요가 없습니다. "열매 맺읍시다." 구호를 외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의 임재를 구하면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예수님께 붙어 그분이 주시는 은혜를 받고 살면 예수 열매는 맺혀집니다. 농부 하나님이 가꾸어 주시는 대로 순종하면 좋은 열매는 맺혀집니다. 그래서 우리의 싸움은 참 포도나무되신 예수님께 잘 붙어 있는 싸움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제목과 예수님을 묶는 것입니다. 내 자식과 예수님을 묶어 버리면 자녀들에게서 예수 열매가 맺혀집니다. ·내 교회를 예수님께 묶어버리면 교회 안에서 예수 열매가 풍성해 집니다. 내 나라와 예수님을 묶는 것이 구국기도입니다. 내 가족의 질병과 예수를 묶는 것이 치유기도입니다.

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위로를 얻으십시오.

내 인생가지가 붙어 있는 그 나무가 예수입니다. 내 인생나무를 가꾸시는 농부가 하나님이십니다. 내 인생 열매를 맺도록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이보다 더 큰 감사, 더 큰 위로가 어디 있겠습니까?

V. 그 열매 들고 천국 간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큰나무 무성한 가지 화려한 잎사귀를 자랑해 왔습니다. "세계가 놀랄만큼 한국교회가 빨리 성장했다. 세계적 대형 교회가 얼마가 생겼다. 천만 성도가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잎만 무성한 한국교회에 감동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제 네가 맺은 열매를 보여 달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만큼 믿었으면 내 자식들이 내게 감동받고 먹고 살 수 있는 열매가 있었어야 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그만큼 예배하고 은혜받고 살았으면 내 남편 내 아내가 볼 때 나누어 먹고 싶은 열매가 있어야 하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성도님, 그만큼 받고 살았으면 이웃들에게 보여지는 무슨 열매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오늘부터 우리는 성령의 열매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엔 은사가 있고 열매가 있습니다. 은사는 외적인 것이고 열매는 내적인 것입니다. 은사는 섬기기 위한 것이고 열매는 존재 즉 성품을 위한 것입니다. 능력과 은사는 있는데 열매가 없는 것도 기형이요, 열매는 보이는데 은사와 능력을 모르는 것도 기형입니다. 은사를 구하는 것만큼 열매를 맺어야 하고 열매가 나타나는 것 만큼 능력과 은사도 필요합니다. 때문에 오늘부터 우리교회가 성령의 열매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성령의 열매를 확인하고 주신 성품으로 가정과 교회와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나무, 예수 열매!

이것은 우리인생, 신앙생활의 목표입니다. 때로 나로부터 소중한 것들이 떠나고 떨어져 나가고 잘라져 나갈 때가 있습니다. 왜요? 예수님께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더 소중한 것, 영원한 것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농부는 더 많은 열매를 얻기 위해 과실나무 가지를 잘라주는 전지전정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2절)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고난과 고통 그리고 환란을 허락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만 잘 붙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헛된 세상, 허무한 열매에 매이지 말고 예수 열매 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환란이 임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1:9)

때로 인생길이 막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너무 달리기만 하지 말고 농부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 예수님께 잘 붙어 있나 점검해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길이 막혔습니까? 돌아가 보니 그 길도 막혔다고요? 지금은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 만나야 할 때입니다. 조금 더 인생에 여유를 가져 보아야 할 때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통해 나를 예수님께 묶어두고자 하십니다. 그 길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언젠가 내 인생의 마지막 막이 내려지고 하늘로 오라는 종이 울릴 때 우리는 열매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직위는 열매가 아닙니다. 이 세상 성취도 열매는 아닙니다. 무엇을 얼마나 얻고 살았느냐 그것도 열매는 아닙니다.

예수 열매 가지고 천국에 서야 합니다. 주님, 조금이라도 주님 닮은 그 성품의 열매가 여기 있습니다. 제가 관계를 맺고 섬기고 복음을 전하여 얻은 생명의 열매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 받아 주시옵소서. 모두 주님께 붙어 주님으로부터 얻은 열매들입니다. 농부되신 하나님께서 기대했던 바로 그 열매들입니다. 기뻐 받으시옵소서.

여러분, 당신은 자랑스런 예수 나무입니다. 예수님께 잘 붙어 있으면 예수 열매가 맺혀집니다.